5월 :: 람푼,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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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적인 현지적응을 마친 5월즈음에 이르러서 본격적인 홈스테이 활동을 시작. 람푼씨티에서 40분 거리에 있는 타캇이라는 동네로 입성하게 되었다.. 두둥!
▶그냥 마을 모습. 하늘이 참 예쁘다. 밤엔 별이 쏟아질거같이-
슬쩍 며칠쯤 지냈던 것과는 엄청난 차이를 보였으니..
어쨌거나,
이곳에서 하게 된 일은 대략
학교가기+퇴근 후 마을생활하기
쯤이 되겠다.
일단 학교.
▶학교 간판(?).
▶학교 운동장
▶학교 건물(교무실과 4~6학년 교실, 컴퓨터실, 도서실이 있다)
▶아침 조회모습. 아침마다 운동장에 모두 나와 조회를 한다. 국기 게양 후 선생님의 말씀, 아이들의 간단한 스피치 그리고 무예타이 체조로 시작되는 학교의 아침.
▶학교 부속 유치원 아가들도 조회에 함께한다. 교복위에 앞치마를 입은 모습.
아 이에 앞서 마을 입성 첫날에 이루어진 학교 선생님들의 축하회식! 어쩌면 이날부터 우리는 선생님들의 진면목을 적나라하게 봤을지도 모를.. 일이다...
▶회식중. 아직은 낮이라그런지 정갈한 맛이 나는 것 같... 태국인의 삶의 가장 큰 낙인 가라오케가 시작되고부터는 모두가 하나되는 진풍경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물론, 오프 더 레코드...
이렇게 시작된 홈스테이. 대략적인 일상을 살펴보자.
▶아침에 무척이나 일찍 등교하는 아이들. 모두가 학교 청소를 한다. 보통8시에서 8시 반쯤 조회가 시작되는데 7시쯤부터 학교에 모여드는.. 아침에 학교가기 싫어서 이불속에서 버둥댔던 나를 생각하면 참 기특한 일이다. 게다가 청소까지 하다니.
▶ 무예타이 체조를 하는 따완과 아이들. 저 너머로 파도 보인다.
▶ 요일마다 바뀌는 교복. 오늘은 예쁜 태국 전통의상을 입는 날.
노란 옷을 입은 아이들을 보면 병아리 같다. 물론 날보고 외치는 함성을 생각하면....-_-...닭이다...
▶ 학교 건물 안에서 바라본 창밖풍경. 불교국가의 면모를 여실히 드러내는 절들이 마을마다 꼭 하나씩 있다. 학교 옆에 있는 절.
▶아가들과 놀아주고 있는 파와 따완. 자갈을 쌓고 무너뜨리는 정체모를 놀이다.
▶방과후 모습. 대부분의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등하교를 하는데 수업이 끝나면 집에가서 옷을 갈아입고 학교로 다시 모여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학교가 공부만을 하는곳이라기 보다 아이들의 사랑방 역할까지 톡톡히 하고 있는 셈. 특별히 '피 까올리(한국언니, 누나)'를 집으로 모셔가야 하는 특명을 받은 아이들은 이곳에서 오랜시간 대기하기도 하는데..
▶예쁜 하늘. 그러나 너무 더워서 기력이 쇠했던 기억뿐...
▶내동생 씨빗. 특히 홈스테이 초기에는 내가 어딜가나 뭘 하나 꼭 따라다녀야만 한다고 해서 나를 눈물흘리게 했던 녀석. 나중에는 나따위 아웃오브안중이긴 했다. ㅋㅋㅋ 저 캐리어식 책가방은 요즘 유행아이템인듯. 그야말로 '잇백'인 셈.
▶우리집에 놀러온 아이들. 재밌는건 내가 태국말을 잘 못하니까 아이들에게 애취급 당한다는 거다. 언어구사수준으로 레벨이정해 졌으니.. 아직 저렙이지만 언제나 만렙을 이상으로 하고있다. 어쨌든 나의 부족한 실력이나마 향상시켜준 원어민 선생님들인 셈.
▶이것은 비밀컷! 울 학교 교장쌤의 달콤한 낮잠 도촬 ㅋㅋㅋ 우리의 정신적 지주가 되어주셨던 얼리어답터 교장쌤! 물론 이렇게 주무시는 것은 자주 있는 일이 아니며 대부분은 눈썹 휘날리시며 일하느라 바쁘시다. 하루종일 학교에 있어서 못 뵙는 경우도 있고잉.
▶우리 외증조할머니! 엄마의 엄마의 엄마다. 실제 연세로는 나의 할머니정도. 다들 일찍 결혼해서 일찍 아이를 낳으시는 바람에 외할머니의 연세가 한국엄마의 연세와 비슷했다는.. 외증조할머니께서 지금 하고 계신것은 대나무로 직물짜기(?). 이 대나무를 엮어서 만든 것으로 모자를 만든다. 나름 손재주가 있다고 자만했건만 이 엮기를 배우는데 외증조할머니 애를 꽤 먹였다.... 하지만 지금은 달인! ㅋㅋㅋㅋ
▶외증조 할머니께서 만드신 대나무줄기(?)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씨빗. 지금 씨빗이 쓰고 있는 모자같은것을 만든다.
▶ 외삼촌할아버지. 아까 외증조할머니께서 엮으신 것을 실로 밖아 모자를 만드신다. 2차원에서 3차원으로 변화하는 모습. 신기하다.
▶토요일 밤에 서는 싼캄팽 스트리트 마켓. 현지인들이 즐겨찾는 명소 중 하나. 매주 다양한 물건들이 착한 가격으로 선을 보인다. 현지 사장님들 역시 흔쾌히 깎아주시는 그야말로 매력만점 놀이터.
▶일한다.. 좌맥주 우마우스(혹은 키보드)로 일하는 모습.
대략 이정도.
사실 5월은 홈스테이 적응하느라 개인적으로 힘겨웠던 시기이기도 하다. 가족 외의 사람들과 살아본 경험이 없던 나로서는 말도 잘 안통하는 이들과 한집에 산다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 이기도 했을 뿐더러.. 사생활(?)에 대한 문화차가 엄청난 폭풍으로 다가왔었기 때문에. 방문을 노크없이 열고 들어온다던가 창문에 커튼이 없어서 밖에서 다 보인다던가 하는 아주 사소한것들임에도 불구하고 나의 한계를 슬슬 드러내는 대목이기도 하다. 물론 현지 YMCA스탭들과 가족들의 도움으로 많은 부분 개선되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게 맞춰주시려고 정말 많은 분들이 노력하신거지.
지독한 개인주의의 노예로 살아오던 내가 해방되는 순간일수도 있었을 게다. 그러나.. 까놓고 얘기하자면 그때의 난 돌아버릴것 같이 힘들기도 했다. '알을 깬다는게 이런거구나'라는 수준에도 이르지 못할 정도로...(의식이 희미해지고 있었던거 같다;; 덕분에 팀원들에게 보이지 않아도 좋을 모습까지 보이기도 했다. 미안..-_-*)
어쨌거나 이것이 홈스테이 시작의 단상.
아무데서나 잘 먹고 잘 자는 태국팀: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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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2009. 6. 23
태국에 온지 벌써 100일이 지났고, 이제 한국으로 돌아가기 40여일의 시간이 남았다.
이 곳에서 몸에 익숙해지고 배운 것 중에 이동식 생활을 통해 하나가 어디가던지 잘 먹고 잘 씻고 잘 잔다는 것…
베이스캠프인… 이제는 정말 집이라고밖에 생각 안 되는 쌈캉펭 YMCA외에도 정말 여러 곳에서 짧게는 1박2일 길게는 한달 정도의 시간을 숙박을 하였다.
아직 남은 기간 또 이동해서 머물러야 할 곳이 있긴 하지만…
지금까지 태국에서 머물렀던 숙소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1. 쌈캉펭 YMCA (3월 5일~8월4일)
우리의 집!!!! 가장 편한 곳~~
처음 치앙마이 공항에 내려서 Y스탭들이 우리를 데려다 준 곳은 바로 이곳 쌈캉펭 YMCA이다. 빈 교실에 있는 책상을 싹 치우고 서랍장과 빨래 바구니, 옷걸이와 침대 메트리스, 이불, 베개… 이런 섬세한 배려까지 해주신 우리의 포근하고 아늑한 숙소이다.
태국팀 10명중 여자 8명은 한방에 4명씩 2층 205호와 206호에서 지내고 있고 남자 2명은 3층 한방을 쓰고 있다.
처음 왔을 때는 나는 사다리 타기로 뽑아서 따완(수진), 마리(민영), 꿀랍(자하)과 한방을 썼는데 4월이 되면서 플로이(서현), 퐈(희진), 마리(민영)와 한방을 쓰고 있다. 그 후에는 귀찮아서 그냥 방 안 바꾸고 쭉 살고 있다.
이곳의 음식은 Y 스탭이신 피멈과 피낭이 오셔서 아침 점심 저녁을 해주시고, 1층 부엌에 세탁기도 있어서 빨래도 쉽게 할 수 있다. 샤워시설은 화장실에서 하는데 벌레가 좀 많고 찬물만 나오긴 하지만 이젠 적응해서 샤워하는데 불편함은 없다. 다만 비가 온 날에는 날개 달리고 징그러운 벌레가 화장실 바닥과 세면대를 뒤덮고 있는 건 아직도 적응이 되지 않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Day off를 보내고 있고 저녁이 되면 우리팀끼리만 남아서 각자 혼자 시간을 갖기도 하고 함께 보내기도 하면서 지내고 있다.
마음도 몸도 이곳에 오면 가장 편한 쌈캉펭 YMCA~! 정말 우리의 ‘집’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이 좋은 곳이다.
2. 람푼 홈스테이 (3월 16,17일 / 5월 19일~7월3일)
모든 라온아띠 멤버는 5명이 한 팀이 되서 각 나라로 파견되어 있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태국팀만 람푼팀, 쌈캉펭 팀(지금은 더이따오 팀이지만) 이렇게 두 팀이 와서 10명이서 함께 생활하고 있다.
태국에서의 대부분의 생활은 10명이서 한팀처럼 같이 생활하고 있지만, 예외적으로 지역에 들어가는 기간에는 따로 지내고 있다.
우리팀인 람푼팀의 경우는 와타캇 스쿨에서 아이들과 함께 지내고 있고, 더이따오팀은 더이따오 프랭8스쿨에서 아이들과 함께 지내고 있다.
10명 한 명씩 다른 집에서 홈스테이를 하고 있는데, 나의 경우는 람푼팀이기에 람푼에서 생활하고 있다.
3월 중순에 홈스테이를 미리 체험해 보는 기간으로 람푼에서 2박, 더이따오에서 2박을 했었다. 람푼 우리 집에 촘푸랑 같이 2박을 했었는데 그 때는 근처 사는 아이들이 자기집인양 마구 놀러 와서 우리랑 놀아달라고 하고 사람들이랑 말도 통하지 않아서 어떻게 지내야 할지 막막하고 힘들었었다.
그러나 몇 달이 지나고 5월 중순에 홈스테이 들어와서 계속 홈스테이를 하고 있는 현재는 태국에서의 생활이 많이 적응되어서 인지 불편하지 않고 난 오히려 집에 있으면 편하다.
우리 집 가족의 경우는 메(태국어로 엄마), 피웨(언니) , 피겜(삼촌?), 봇(우리애기), 야이(할머니) 이렇게 다섯명이서 살고 있는데 야이와 피겜은 나랑 대화를 거의 나누지 않는다. 보통 메가 밥 먹거나 여러가지 많이 챙겨 주시고, 피웨는 날 볼 때마다 옷이나 신발 같이 이것저것 선물을 많이 주신다. 그리고 우리 집 귀염둥이 봇은 낯가림이 심해서 처음엔 내가 불러도 들은채 만채 하더니 지금은 만나면 신나게 잡기 놀이를 하며 즐겁게 지내고 있다.
내 방은 굉장히 아담한데 큰 침대 메트리스가 방 전체를 차지 하고 있고 조그마한 테이블 하나가 앞에 있다. 그리고 나의 친구 도라에몽 인형도 함께 생활하고 있다. 23년만에 처음으로 혼자만의 방을 갖게 되었고, 방에 있으면 가족들이 부르긴 하지만 피곤하다고 하면 터치를 하지 않기 때문에 누워서 음악 듣거나 일기 쓰거나 편지 쓰거나… 그냥 그렇게 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샤워시설의 경우는 무려 뜨거운 물도 나와서 따땃한 물로 샤워를 하고 있으며, 빨래는 가끔 빨래 통에 넣어놓으면 세탁기에 돌려서 다 마르면 우리 방에 옷걸이에 걸어서 주시는데 언제 빨래를 주실지 몰라서 그냥 맘 편하게 쌈캉펭 YMCA가서 빨고 있다.
5월 중순부터 7월초까지 홈스테이 할 예정이고, 평가회를 빼면 이제 일주일도 홈스테이 기간이 남지 않았다. 주말은 항상 쌈캉펭 Y에 가거나 다른 지역에서 생활을 해서 평일에만 홈스테이를 했었는데, 우리 집 가족들이 정말 좋아서 그리울 것 같다. 남은 기간동안 우리 봇이랑 잘 놀고 메 말씀 잘 듣고 착하게 지내야 겠다.
3. 더이따오 홈스테이 ( 3월 18,19일)
3월 중순에 2박 했었던 더이따오 홈스테이.
난 더이따오 팀의 수은이(모아)와 함께 홈스테이를 했었다.
람푼 지역은 시골 동네에 옹기종기 집들이 모여 있는 분위기라면 더이따오 지역은 산동네(첩첩 산골은 아님)에 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지는 않다.
수은이네 집은 할머니, 할아버지, 쨍이라는 유치원 아가와 지내고 있는데 애기도 귀엽고…(너무 놀아 달라고 하는게 수은이는 힘들다고 하지만)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친절하게 잘 챙겨주셔서 편했던 것 같다.
4. 도인타논 텐트 (4월 1일,2일)
태국에서 가장 높다는 도인타논.
이 곳에서 우리는 유스리더들과 캠핑을 했었다.
산속에서 이렇게 텐트치고 자고, 캠프파이어 한 것은 처음이라서 마냥 신나고 즐거운 경험이었다.
텐트에 2명이 함께 들어가 잠을 잤는데, 제비 뽑기로 라온아띠 한 명과 태국 유스리더 한 명이 짝이 되어 한 텐트에 들어갔다. 그러나 나는 어찌 된게 박촘푸, 김마리(장민영)..이렇게 콘까올리(한국사람) 셋이서 잠을 자게 됐다. 덕분에 밤새 옆 텐트가 시끄러울 정도로 민영이랑 떠들었지만…
이 곳에서 밥은 Y 스탭분들이 신경 써줘서 맛있게 먹었고, 샤워장은 근처 별장 같은 곳에서 편하게 했었다.
밤하늘을 이불삼고, 잔디밭을 요 삼아 잤던 기분… 밤에 산에서 아래를 내려보면서 느낀 자연을 통해 벅참 감동이 있었던 행복한 도인타논 캠핑이었다.
5. 도인타논 카렌족 마을 (4월 3일)
도인타논 텐트에서 2박을 하고 도인타논에서 살고 있는 카렌족 마을에 가서 1박을 했다. 홈스테이라고 볼 수는 없는 건 마을사람 집 한집을 통채로 빌려서 한집은 여자숙소, 한집은 남자숙소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텐트를 치고 잤다.
밥은 이번에도 Y스탭들이 해주셨다. 샤워는 화장실에서 했는데 화장실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안에 촛불을 키고 했었는데 그리 깨끗하진 않았지만 까올리 쏘까뽁(한국인 더러워)라는 말이 듣기 싫어서 난 샤워를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아! 그리고 도인타논에서의 잠은 둘 다 침낭에서 잤다.(텐트에서랑 카렌족 마을 집에서 둘다) 사실 침낭에서 잔건 라온아띠 국내 합숙훈련때 양평 가서가 처음이었는데… 이래저래 올해 침낭에서 많이 자게 된 것 같다.
6. Praw 마을 홈스테이 (4월 24일, 25일)
유기농 농산물을 키워 판다는 praw마을.
이 마을에 가서 두 명씩 짝을 지어 홈스테이를 했다.
이번 파트너는 따완(구수진)이었다.
이 마을에서의 기억은 더운 것밖에 없다.
태국은 4월에서 5월초가 건기라 정말 더운데, 이 더위는 살인적이라 한국에서는 느낄 수 없을 정도의 강한 햇볕에 몸이 녹아 내릴 지경이다. 쏭크란이 4월중순에 하는데 왜 그때 송크란을 하는지 알 것 같다. 쏭크란을 하면 신나게 물을 뿌리고 맞다 보면 더위를 잊고 오히려 추울 정도니깐…
홈스테이 기간에 잠시 농산물 수확 및 포장 도와 드리고 새벽시장 열리는 곳 따라가서 장사 조금 도와 드린 정도… 그냥 그럭저럭 이 때부터 홈스테이 및 짐싸기에 달인이 된 것 같다.
7. 치앙라이 Y호텔 (5월 10일 ~ 14일)
지금까지 묵었던 숙소중에 최고급 이었다.
무려 호텔이었으니깐…
오랜만에 누워보는 폭신폭신한 침대 메트리스, 하얀 시트와 이불, 그리고 따뜻한 물이 나오는 샤워시설...그리고 맛있는 식사까지!!!
치앙라이에 있었던 기간은 HIV마을 방문, VISA연장하러 미얀마 국경 방문, 댐 만들기 작업등 짧은 기간에 많은걸 경험하고 배운 시간이었고 아무리 힘든 일정 속에서도 숙소가 좋아서 몸과 마음이 편했다.
처음으로 쌈캉펭Y에 가고 싶지 않을 정도로…자발적 가난, 자발적 불편함을 겪으러 왔다고 하지만….
역시 사람은 어쩔 수 없이 편한 것 익숙한 것이 좋은가 보다.
8. 더이따오 프랭8스쿨(6월 5일,6일)
‘Y volunteer for EARTH ‘camp를 하기 위해 유스리더들과 함께 더이따오 프랭8스쿨에 모였다. 프랭8스쿨의 도서관을 정리하고 페인트칠 및 벽화를 그리는 작업이었는데 람푼팀도 더이따오팀과 함께 했다.
오랜만에 간 더이따오였고, 당연히 3월 달에 왔던 홈스테이 집에서 잘 줄 알았는데 유스리더들과 함께 학교 교실에서 자게 됐다.
타이유스리더 아이들과 라온아띠는 다른 교실을 썼는데, 모기장도 쳐 주시고 침낭 속에서 잤다. 이제 침낭이 더 이상 낯설지 않는다.
9. 메홍손 지역 홈스테이 (6월 13일~15일)
원래는 없던 스케쥴 이었는데 우리의 요청과 여러 사람의 의견이 모아져 갑작스럽게 방문하게 된 메홍손.
도인타논에서도 봤었던 카렌족이 사는 마을에 방문하게 됐다.
태어나서 이렇게 길이 험하고, 첩첩 산골은 처음 가봤다. 치앙마이 쌈캉펭 Y에서 메홍손 시내까지 차로 3시간(이 길도 중간에 구불구불해서 편한 길은 아니었다.) 그리고 바퀴가 큰 썽태우를 타고 3시간 정도 가서 도착한 마을. 썽태우 타고 가는 길은 비포장 도로에 구불구불한 산길이라 어떻게 올라가나 싶을 정도로 험하고 멀었다.
이 곳에서도 홈스테이를 했는데, 이번엔 2인 한집이 아닌 one by one 한명 씩 한집에 들어가게 됐다.
나는 찐따나라는 13살짜리 소녀 집에서 살게 되었는데 방 한 개를 빌려줘서 편하게 잘 수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지금까지 갔던 숙소 중에 환경은 최악이었다. 물도 빗물을 받아서 하는 건지는 모르겠는데 석회가루가 섞여서 뿌연색이었고, 밤에는 불 안 들어 오는 집도 많고 거리에는 가로등이 하나도 없어서 저녁8시만 되면 밖은 달빛만 보일 정도로 깜깜했다. 씻을 때도 우리 집 화장실은 불이 안 들어와서 어둡고 냄새 나는 화장실에서 석회물로 씻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곳 저곳 홈스테이하고, 여기저기에서 자는 거에 단련이 되어서인지 별로 불편하지 않았다. 다만 밤이 빨리 찾아와서 다른 곳에 있을 때보다 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났지만…
태국에 살지만 태국인이 아닌 소수민족. 그 중에서도 우리나라 사람들과 닮은 카렌족. 그들은 첩첩 산골에서 계속 살아왔기 때문에 그곳이 편해서 사는 걸까. 아니면 갈 곳이 없어서 계속 그곳에서 머물 수 밖에 없는 걸까.
나의 편견일 수도 있지만, 가진 것이 없어서 웃고 떠들고 즐거워 보이는 사람들이었지만, 이 사람들의 행복이 과연 어떤 색인가 생각해보게 되는 홈스테이 기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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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우리는 3달반동안 9곳의 숙소에서 숙식을 해결했다.
덕분에 이젠 어디 간다고 하면 짐도 몇 분이면 금방 싸고 자는 것도 씻는 것도 먹는 것도 어디 가서든 적응을 잘 하게 되었다.
7월초에 일주일정도 휴가를 받아서 여행을 가게 됐는데, 아무리 싸고 질 나쁜숙소에 들어가도 충분한 휴식을 취할 수 있을 것 같다.
가끔 내가 태국에 와서 무엇을 배웠나. 얼마나 많이 변했는가를 생각하곤 한다. 그게 무엇이라고는 아직 확실하게 정의 내릴 순 없지만, 이렇게 태국사람들과 함께 있을 수 있고 생활할 수 있는 나와 우리팀원들을 보면 많이 성장하게 적응 한게 아닌가 싶다. 앞으로 남은 한달 반 동안의 태국에서의 기간도 태국을 좀 더 배우고 적응하면서 지내고 싶다.
아픔 속의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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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7. 3람푼에서의 생활이 내일이면 작별을 한다.
학교에 오면 ‘피차엠~’ 하면서 나를 부르는 아이들을 보는 것도, 재밌고 친절하신 선생님들을 만나는 것도, 날 항상 보살펴 주시는 호스트패밀리와 함께 지내는 시간도, 우리의 ‘능썽쌈’하면서 펀치를 날렸던 무에타이 도장도, ‘히우카우’(배고파요) 하면서 양쁠라 두부 먹었던 식당도… 그 외 익숙한 람푼의 풍경들이 오늘 마지막 밤을 보내면 내일 다시 쌈캉펭으로 갔다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처음에 이 곳에 왔을 때 막막했었다.
어떻게 아이들을 대해야 할지, 어떻게 가족들을 대해야 할지…
아이들은 우리가 뭐가 좋은지, 피 까올리~(한국인), 혹은 우리의 태국이름을 부르면서 매일 쫓아 다녔다.
우리를 좋아해주고 받아 준 아이들이 예뻤던 것도 잠시… 우리에 대한 지나친 관심이 우리를 점점 지쳐가게 만들었다.
아이들과 노는 대신 우리는 교장실에 앉아서 책을읽고, 다이어리를 쓰고, 컴퓨터를 하고, 편지를 쓰는 등 각자 자기 할일을 하며 학교에서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사실, 태국은 이미 생활 기반이 잘 갖춰져 있는 나라이기 때문에 우리의 손길이 많이 필요하지 않는다.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해외자원봉사의 개념은 가난하고 열악한 환경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밀고 같이 더러워지고 같이 아파 하는 숭고한 희생정신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태국에서의 자원봉사의 개념은 너무 달랐다.
우리가 주체적으로 활동을 찾기 보다는 YMCA에서 끌고 다니는 데로 따라 다녔고, 갑자기 스케쥴이 바껴도 우리에게 미안하다는 말도 듣지 못했고, 심지어 자기네들 스타일에 맞추기를 요구하면서 보고서가 튕긴적도 있었다.
스케쥴은 유동적이었고, 여러 마을을 다니면서 잠깐씩 아이들과 만나는 시간을 가졌기 때문에 우리는 체계적으로 프로그램을 짜서 아이들을 가르치기 보다는 항상 ‘안녕하세요.’ ‘고마워요’ ‘사랑해요’ 다시 만나요’ 등의 짧은 인삿말들을 노래로 만들어 불렀고, 꼬리잡기, 말전달하기 게임, 나따라해봐요, 개구리송, 곰세마리 등 매일 비슷한 패턴의 수업을 하였다.
그리고 한국인만 보면 ‘땐 노바디~(노바디 춰주세요)’하는 사람들 속에서 작년 노바디 열풍때도 추지 않았던 노바디를 연습해서 사람들앞에서 춤을 췄다.
이 곳 생활을 하다 보면 말도 통하지 않고, 여기서 시키는 일조차 잘하는지 모르겠고, 스스로 무언가 찾아서 이곳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데 찾기 힘들었고, 모든게 다 제대로 되지 않는것 같아서 태국에 왜 왔는지에 대해 괴리감이 심했다.
그러나 태국에서의 생활도 엄연한 자원봉사였다.
며칠전에 중간평가를 하기 위해 송실장님과 인천 Y간사님께서 왔다 가셨다.
나는 답답한 마음에 송실장님께 자원봉사의 의미에 대해 질문을 했다.
내가 생각했던 자원봉사는 바로 성과물이 보이는 일은 아니지만, 강요 받는게 아니라 내가 스스로 찾아서 즐거운 마음을 갖고 사람들을 위해 일하고, 서로 행복해지는 모습을 서서히 느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곳에서는 항상 끌려 다녔고, 여기서 시키는 일 외에는 제대로 한 것이 없어서 답답하다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송실장님은 해외봉사의 경우 그 나라에 따라 자원활동의 내용이 달라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하셨다. 태국같이 기반이 잘 갖춰진 나라는 동티모르처럼 아무것도 없는 나라에서 하는 일대신 이 곳 사람들이 노바디를 춰달라고 하면 추는 것이 맞는 거라고 하셨다.
가난한 사람을 위한 복지 뿐만 아니라, 중상층을 위한 복지도 필요한 것이고 피비랜내 나는 전쟁터에서 아이들의 목숨을 구하는 것 만이 숭고한 자원봉사가 아니라고 하셨다.
그러나 자원봉사 하면 절대 빈곤, 힘들어하는 사람들의 모습등이 먼저 떠오르는 고정관념을 갖고있는 나로서는 이미 기반이 잘 갖춰저 있는 태국이기 때문에 람푼에 와서도 우리가 과연 필요한 존재일지에 대해 회의감이 많이 들었었다.
처음에 나온 수업 시간표는 우리가 일주일에 8시간정도 아이들과 수업할 수 있는 시간이 할당되어 있었다. 그러나 3주차 쯤 되었을 때, 방콕에서 학교 평가를 오셔서 아이들은 우리들과의 수업대신 시험공부에 더 매진을 해야 했고, 우리들을 일주일에 한번 세 시간 몰아서 하는 수업시간 밖에 받지 못했다.
게다가 그 적은 수업 시간 조차도 매번 변동되는 YMCA 일정 때문에 지역활동 하다가 다른 곳에 갔다가 오면서 취소 되는 경우가 많아 제대로 수업했다고 하는 시간은 다섯손가락도 넘지 못한다.
이래선 우리와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냥 시간떼우기 아닌가… 그리고 아이들한테 대체 뭘 가르쳐야 할지 혼란스러웠고 답답했다.
그러다 내가 찾은 해답은 – 정답이라고 는 확신할 수 없지만 – 무언가를 제대로 해야 겠다는 강박관념을 갖기 보다는 이대로 물같이 흘러가는 스케쥴을 따라가는 것이었다.
한달 반정도밖에 안되는 기간에 한국어를 아무리 체계적으로 가르친다 해도 아이들이 얼마나 기억 할 수 있을까? 심지어 난 고등학교때 제2외국어로 2년동안 수업 들었던 중국어도 하나도 기억나지 않고, 매일 붙잡고 있는 영어도 잘하지 못한다.
이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체계적으로 가르친다는 것은 내 오만한 생각일 뿐이었다. 먼 한국에서 건너온 우리를 보며 신기하고 반가워 하는 아이들과 웃고 떠들고 뛰어다니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에게 더 많은 것을 주는 거라고 깨달았다.
그리고 송실장님이 왔다 가면서 람푼지역에 대해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Y에서 왜 람푼과 더이따오를 활동지역으로 선택했는지 생각해 본 사람있냐는 질문에 아무도 대답을 하지 못했다.
더이따오의 경우는 댐건설을 하면서 원래 있던 마을을 강제로 이주시킨 마을이고 삼모작에서 이모작 혹은 일모작밖에 할 수 없는 지역으로 오게된 마을 사람들에게 제대로 보상을 해주지 않아 10년전에 농민운동으로 피비랜내 나는 지역이었다고 하였다. 왜 산골 마을에 있는 집들이 새 집 처럼 깔끔하고, 길이 반뜻하게 닦여 있는지 의문을 품지 않았냐고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그리고 람푼의 경우는 원래 농촌마을이었는데 큰 공단을 들어서면서 갑자기 이주민들이 마을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원주민가 이주민간의 마찰이 생기면서 마을 환경이 급격히 변해 지역사회가 혼란스럽다고 하셨다.
항상 웃고 있고, 우리들에게 항상 호의적이었던 더이따오와 람푼 사람들이 사는 마을에 그런 아픔이 숨어 있으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지역활동을 시작할때쯤 팀내부의 문제, 현지 스탭들과의 마찰, 일에대한 스트레스 등 여러가지가 겹쳐서 하루하루 이겨냈고 아이들에게 웃는 얼굴로 대하기 보다는 피곤하다고 피해버린 경우가 더 많았기 때문에 이 곳에 내가 왜 왔는지 생각하기 보다는 하루하루 버티는것도 힘든 날도 많았다.
한 달 좀 넘는 시간동안 내가 이 곳 람푼에 와타캇 스쿨에서 지낸 게 이들에게 어떤 의미일지는 아직도 잘은 모르겠다. 마을 전체가 알고 있는 깜짝 이벤트 일지도 모른다. 그 깜짝 이벤트가 이들을 즐겁게 했기에 우리에게 호의를 베풀고 싶어 지나친 관심을 표했고 친절을 베풀었다고 생각한다.
그 호의를 감당하기 힘든적도 있었지만 우리의 존재를 무시하고 냉소적으로 바라보지 않은점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겉은 평화로워 보이지만 혼란한 시간을 겪고 있는 마을 사람들에게 우리의 존재가 즐거움이 되고 희망이 되었길 염치 없이 바랄 뿐이다.
지금까지 람푼지역에서 우리를 받아준 모든 분들께 다시한번 감사의 마을을 전하고 싶다. 그리고 귀여운 덱덱(아이들), 쿤 크루(선생님), 크럽쿠르아 컹 찬(나의 가족) 모두 보고싶을 것이다.
다시 내가 이 곳에 올 수 있을까? 아니 이곳에 오고 싶어 할까? 확실한건 이 곳을 그리워 하긴 할 것이다.
모두 컵쿤막막카. 싸와디카. 촉디나카.
(정말 고마워요 안녕히 계세요, 행운을 빌여요)
namping의 이야기 - 3개월이 다 되어가는 어느 시점, 어느 곳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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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태국에서 지낸지 3개월이 다되어간다.이제는 같은 팀원들도 이름보다는 '남삥' 이라는 이름이 입에 붙었는지 나를 부를때 '남삥오빠' 내지는 '남삥'이라고 부른다. 그나마 형 소리 안듣는게 다행이랄까..ㅡㅅ-;;하여튼 '김충현' 이라는 한국이름보다는 '남삥'이라는 태국이름이 더 익숙해져간다.요즘은 '더이따오'라는 곳에서 홈스테이를 하며 이곳에 있는 학교에서 아이들을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다. 근데 이 학교가 '대안학교' 같은 형식이라 수업분위기가 상당히 자유분방하다. 쉽게 풀어쓰자면 수업시간인지 가끔 의문이다;;이런 분위기인지라 아이들을 가르치기가 좀 난감할때도 있다. 우리가 전적으로맡아서 하는 수업이라고 해봤자, 한국어클래스가 전부이지만;; 실은 다른 수업시간에도우리가 배정되긴 했는데 막상 들어가봤더니 그냥 수업보조, 다른 말로는 꿔다논 보릿자루?와 같은 일을 하는 경우가 많아서 가끔은 허탈하기도 하다. 하지만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웃고 떠드는 아이들과 지난 학창시절(?)의 나를 비교해보면 부럽기도 하다.다음날이 시험이어도 '빠이티여우마이?(놀러갈래?)' 라고 했던 우리집 꼬맹이.아이들이 돌아다녀도 그저 웃으시는 선생님(아닌 분도 계시지만;;)한국과 비교하면 할수록 이곳은 어린이들의 천국?이 아닐까 싶다.'우리나라엔 국제중학교같은 것도 생겨서 초등학교때부터 6년 내내 공부할텐데....중학교가면 좋은 고등학교에 가기 위해 3년 내내 공부할텐데...고등학교가면 좋은 대학교에 가기 위해 3년 내내 공부할텐데...대학교가면 좋은 직장에 가기 위해 4년 내내 공부할텐데...좋은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직장에 들어간다고 과연 행복할수 있을까?어릴때 친구들과 뛰어놀던 소중한 기억들을 나는 가지고 있는데 요새 아이들은..나의 아들,딸은...가질수 있을까? 이곳의 아이들처럼 건강하고 해맑게 웃을수 있을까?'엊그제 '더이따오'의 아이들을 보면서 들었던 생각이다. 생각해보니 3월에 태국에 온 이후 꽤 많은 곳(나름)에 다녀봤지만 축 쳐진 얼굴을 한 사람을 본 적이(내 기억이 맞다면) 없다. 물론 이곳 YMCA에서 보여주는것만 봐서 그럴수도 있지만 가능하다면 태국사람들 모두가 늘 웃는얼굴이었으면 한다.어쨌든 눈이 마주치면 인사를 건네며 웃어주는 사람들을 보면서 지금의 나보다는 행복하게 살고 있는거 같다고 생각했다. 한국에서의 난 다른이와눈이 마주쳤을대 웃어주면서 인사를 해줄만한 마음의 여유가 그리 많진 않았으니..태국사람들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과연 행복한 사람들이 사는 이곳에서 내가 무엇을 할수 있을까?' 라는 고민을 했는데, 그 고민은 지금까지도 답이 안났다.하지만 정답없을 그 고민에 대해서 같이 행복하게 지내는게 어떻게 보면 지금의 내가 할수있는 최선이 아닐까라는 생각에 요즘엔 아이들과 좀 더 많이 놀아주고 있다. 아직까진 아이들과 놀아주는게 익숙하진 않지만 노력하는 수밖에;; 여하튼 자원활동을 하러 온 이곳이지만 되려 내가 배우고 있다는 생각을 하며새삼스런 다짐을 한다.이곳에서의 남은 소중한 2개월, 헛되이 보내지 말아야지!라고~!!!그리고 언제나 태국사람들이 물어보는 질문을 나에게 던져본다."싸눅마이?(즐겁니?)""캅(네),싸눅막막캅(정말 즐거워요.)"
3.('♡') 우리의 태국이름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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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노마인드에 혹시 뭔일 날까봐 'ㄱㄴㄷ~' 순으로 정리하였습니다._꿀랍(Kularp) : 김자하'장미'_ 남삥(Namping) : 김충현(23)우리나라로 치면 '한강'과 같은 치앙마이의 젖줄_ 따완(Tawan) : 구수진'해, 태양'_ 똥카우(Tonkao) : 염훈(24)직역하면 밥나무, 의역하면 '벼'_ 마리(Mali) : 장민영'마리, 쟈스민'_ 부아(Bua) : 김수은'연꽃'_ 챠엠(Chaaim) : 조남주'허브'의 한 종류_ 쳠푸(Chompoo) : 박선하(25)'분홍빛(아무리봐도 다홍인데)'이 도는 태국 과일 이름_ 퐈(Fha) : 김희진'하늘'_ 플로이(Ploy) : 오서현'빨간 빛이 나는 보석, 반짝반짝'이런 이름을 갖게 된 이유, ?똥카우와 남삥은 그저 '남자' 라는 이유로(^^) 우리 팀 여자 8명을 책임져 주었으면 하는(생활에 없어서는 안되는 밥과 물)마음으로 지어주셨다고 한다. 따완은 처음에 '수리야(해의 다른 말)'라는 태국이름을 나름 지었었는데 '남자 이름'이라는 이유로 '따완'으로 바꿔주셨다. 마리는 따완과 마찬가지로 '마리'로 지어갔었다. 퐈는 아마 키가 커서?라고 추측한다. 플로이는 처음에 '파이툰(Cat's eye)'이라는 이름을 지어갔었는데 별로 좋지 않다고 해서 발음이 비슷한 '플로이'로 지어주셨다(참고로 플로이는 람푼팀이 지역훈련 할 때 구미Y에서 만난 태국 사람들이 '퐈'에게 지어준 이름이었는데 '퐈'언니가 태국에 도착했을 당시 기억을 못해서 말을 못했다.) 나머지 팀원들은 제대로 이야기를 못들었다.
2.('♡') CL이 뭐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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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전혀 글을 쓸 생각이 없었는데 뜬금없는 플로이(서현)언니의 질문으로 갑자기 손이 간질간질 해졌다.갑자기 인터넷을 하던 언니가 우리에게~남삥(충현)오빠와 나~ 질문을 했다." CL이 뭐야 ? "마리(나)는, " 요새 나오는 2NE1 리더요. "동시에 남삥오빠가," 우리가 언청이라고 말하는 애들 중에서 입술이 갈라진 구순열(Cleft Lip) 말하는 거 아냐 ? "아,그랬었지,CL은 YG에만 있는 게 아니였어,결과적으로 플로이언니의 질문에 대한 답은 내 답이 맞았지만 :^)남삥오빠의 답을 시작 삼아 여러가지 이야기를 풀어나가볼까 한다.▲ 치앙라이Y에 도착해 열심히 CL과 CP의 설명을 듣고 있는 중(쳠푸야, 응?)우리 태국팀이 정확히 CL과 CP를 구분할 수 있게 된 것은 불과 2주일 전, 비자연장을 하러 치앙라이를 거쳐 미얀마에 잠깐 발을 들여놓기 위해 치앙라이YMCA에 갔었을 때다.우리나라에서는 모두를 통틀어 흔히 '언청이'라고 말하고 정확한 명칭은 입술만 갈라진 것을 구순열(Cleft Lip), 입 천장이 갈라진 것을 구개열(Cleft Palate)로 구분한다.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아이들을 흔히 볼 수는 없었던 것 같다. 내 경우를 말하자면, 고작 TV나 신문 같은 미디어를 통해서만 접했어서 실제로 본 적은 없었다. 근데 생각보다 태국에서(특히 소수민족이 많이 살고 있고 국경을 접하는 북부 태국지역)는 많은 아이들이 이런문제를 겪고 있었고, 특히 치앙라이Y 측에서 신경을 많이 쓰는 부분이었다. 유전적 요인도 있고 이런저런 이유(부족내에서의 결혼이나 임신 후 충분한 영양섭취가 없었다거나)때문에 순수(?)태국 아이들 보다는 상대적인 관점에서 물질적으로 풍요롭다고 할 수는 없는 소수민족 아이들이 대다수였다.수술 비용은 생각보다 저렴했는데, 수술을 한다는 것 조차 엄두가 안나서 충분히 정상적으로 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생활을 하는 아이들도 많고 어떤 소수민족은 이런 아이들을 '저주받은'아이라고 생각해서 가족들에게 버림받아지는 경우도 있다고 말씀하셨다.이런 아이들을 위해서 치앙라이Y는 모금사업을 하고 또 연계되어있는 태국Y에서도 각 Y호텔이나 장소를 마련해 모금함을 비치해두고 있다. 이 아이들의 수술을 위해 여러 의료진 스탭들이 한 팀을 이루어 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 중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건 한국인 의사선생님. 태국에 거주하고 계신 것은 아니지만 정기적으로 치앙라이에 오셔서 봉사를 하고 가신다는 말씀을 듣고 왠지 뭉클, 뿌듯 해졌다. 앞으로 나는 누구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정말 간단하고 작은 것이지만 그것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은 세상에 많이 있다.가슴이 아프다.다시 가만히 생각해보니,뭐가 가슴이 아파?내가 많이 갖고 있으니까 나눠줘야겠다는 나의 오만함이 이런 감정을 만드나?어렵다!도와주고 싶다.그런데 난 의사도 아니고 그렇다고 한도 끝도 없이 도와줄 정도로 돈이 많은 것도 아니다.그렇다면 내가 이 아이들을 위해, 여기서 할 수 있는 일은 뭘까?
그/녀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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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왓디카/캅"이 곳 태국에 오면 가장 처음 접하는 인삿말이다. 안녕하세요~ 라는 이 인삿말은 말하는 사람이 여성이냐, 남성이냐에 따라서 쓰왓디카, 혹은 쓰왓디캅으로 나뉜다. 카/캅은 존대어로 말하는 이가 여성이면 말 끝에 카.를 말하는 이가 남성이면 말 끝에캅.을 붙힌다. 거의 모든 사람이 이 이분법적인 선택지를 망설임 없이 선택하고 또 사용한다. 하지만 '거의 모든 사람들이 아닌 사람' 들은 이 선택지 앞에서 어떤 생각을 할까?여느 나라가 그렇듯이 이 곳 태국에서도 여성과 남성으로만은 구분할 수 없는 다양한 성정체성이 존재한다. 이 곳 태국에서 라온아띠로 활동하면서 우리는 이 두 정체성(여성,남성)의모호한 경계성에 서있는 사람들-사람들이 흔히 까터이(레이디보이), 톰보이, 게이라고 부르는- 을 만났다. 우리와 자주 활동하고, 잠깐 이 곳 삼강펭 Y 숙소에서 함께 생활한 적이 있는,사람들이 흔히 까터이라고 부르는 그/녀의 이야기를 잠깐 하자면.그/녀는 흔히 인사나 대화 도중에 '캅'이라는 남성용 존칭어를 사용한다.그/녀는 여자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여자샤워실에서 샤워를 한다.그/녀는 짧은 머리, 흔히 남성들이 하는 머리를 하지만 여성용 언더웨어를 착용한다.그/녀는 사회가 규정짓는 '여성스러움'의 기준에 충분히 부합한다. 그/녀는 거의 매일 바지를 입지만 가끔 치마를 입기도 한다. 이런 특성들이 그/녀를 '까터이' 라고 불리게끔 한 것일까.어쨌거나 그/녀는 여자/남자로 분리되는 이분법적인 젠더정체성의 어느 경계선에 서 있고그래서 '당연히' 사람들의 신기해하는 눈초리나 뒤에서 수근거리는 이야기들을 어느 정도감수하고 있다. 그 때문에 그/녀는 가끔 외롭기도 할까?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새에 그들을 '신기해하며' 그들을 '소외하고있는지도' 모른다.만일 '까터이'가 물리학적으로 남성이면서 사회학적인 여성을 담습하는 자. 라고 정의된다면우리 중 누구도 까터이가 될 수 있다. 우리가 '톰보이'를 물리학적으로는 여성이지만 사회학적으로 규정된 남성을 체화하는 자. 라고 정의한다면 우리 중 누구도 톰보이가 될 수 있는 것이다.때로, 규정은 무서운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잘 다듬어진 많은 사회적 규정 속에 우리 자신을 완전히 밀어넣을 때, 우리는 비로서안정감을 얻게 되는 것일까?이 곳에서 알게 된 또 다른 사실인데,태국 사람들은 대게 얼굴이 하얀 것을 예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태국 유스리더중 한 친구가 말한다.자기는 피부가 검어서 마이수와이(예쁘지 않다)고. 얼굴이 하얗다는 이유만으로 (한국에서는 거의 듣지 못하는) 예쁘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마음이 불편하다. 얼굴이 하얀 것이 미의 기준으로 규정되어, 검게 그을린 피부는 아름다움의 저 편으로밀려난다면, 그래서 그런 규정 속에서 우리 모두는 행복할 수 있을까?만일 이 세상의 미에 대한 새로운 규정을 정의내릴 수 있는 권한이 있다면 미의 기준은 없다. 는 규정을 내리고 싶다. 누가 어떤 줏대에 의해서 한 인간의 아름다움을 평가할 수 있으며또 어떤 규정에 의해서 한 개인이 가진 젠더정체성의 스펙트럼을 여자, 또는 남자로만구분 지울 수 있단 말인가.태국에는, 그리고 세상에는 많은 그/녀들이 살아간다. 우리가 당연시하는 많은 사회적 규정들속에 소외 받고 상처받는, 혹은 이런 모호한 경계선상에 서 있는(이 경계선상에 서 있다고 해서 반드시 행복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이들은 소수다.) 이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어떤 이유에서건간에 우리 모두는 정당하다.우리 모두가 자기 자신의 모습 그대로, 그냥 그 모습 그대로 이 땅에 당당하게 설 수 있다면.그렇다면 세상은 좀 더 자유로운 곳이 될 수 있을까?
1.('♡') 뺑 언찌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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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에 와서 가장 나를 당황하게(혹은 기쁘게) 만드는 단어'แป้ง อรจิรา(뺑 언찌라)'그녀는 태국에서 꽤 유명하고 '아름다운' 여자 모델 겸 배우이다.한국으로 치면 송혜교, 전지현 정도 ? ^^*그렇다 !나는 그녀를 닮은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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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국에 도착한 첫 날, 공항에서 '마리' 목걸이를 선물로 받았습니다. :^)처음 온 날 부터 스탭들이나 유스리더 친구들은 날 보고'마리, 마리는 정말 태국 사람같이 생겼어' 라고 말하곤 했다.
현지인처럼 생겼다는 말, 참 듣기 좋다.라온아띠를 지원하면서, 라온아띠가 되고서부터 현지속에 녹아살길 얼마나 바랬던가 !그런데 고맙게도 나는 간단하게 '뺑 언찌라' 라는 단어 하나만으로 단 한숨에 나는 태국인이 되었고 그들은 나를 친근하게 느끼는 것 같았다.솔직히 염훈오빠(똥카우), 수은(모아), 희진언니(퐈)의 태국인 포스를 따라가진 못하겠다.▲ 도요타 에너지 세미나▲ 국제교류 웰컴 파티 치앙마이 Y 호텔 (with Will)▲ 우리가 가게될 람푼 '왓타카' 스쿨▲ 쌈칸펭 Y 에서 일본,라오스,미국 캠퍼들과 함께 점심식사 할 때 !쇼핑을 할 때도 점원들은 나에게 태국어로 말을 걸고 심지어 오리엔탈 프린세스 라는 태국 브랜드 화장품 매장에서는 멤버십카드 발급을 권유하기도 했다. 물론 태국어로... 결국 300밧 주고 가입-_ ㅠ송크란시즌 때 유스리더들과 함께 첫째날을 치앙마이 스트릿트에서 보냈었는데, 그 때도 장난끼 많은 우리 스탭들은(특히 피 똔, 피(?) 위) 지나가는 사람들 한테 내가 '뺑 언찌라'를 닮았다고 큰 소리를 쳤다. 당황한 내 모습이 재밌었는 지 스탭들은 장난을 즐겼고, 그러다 내가 조금 뾰루퉁 해지면 (피)위가 예쁘게 웃으면서 나에게,'마리, 마이뻰라이, 마리 나락 막막(마리, 괜찮아, 마리 엄청 귀여워)'라면서 위로를 했다. 나는 또 푼수처럼 싱긋 웃고 =)어찌 되었든 나는 태국 속에 녹아서 잘 살고 있다.그리고 새로운 재미도 찾았고 :^)어느 나라에 가나 나는 항상 그 속에 조용히 스며들어 외국인 티를 내고 싶지 않았다. 내 얼굴이 그렇게 특별하게 지리적 특성을 띄고 있지 않아서인지(요새 美의 기준이 평준화 되고 있다던데 그 덕분인가?)덕분에 왠만한 동아시아 국가에선 입다물고 있으면 현지인 처럼 살 수 있을 것 같다.사실 가끔 내가 한국인인가? 싶을 때도 많으니까...부모님, 감사합니다.예쁘게 낳아주셔서 덕분에 나는 태국에서 정말 라온아띠가 된 것 같아요. :^)
바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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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이야기 _여기는 벌레가 많다. 그냥 많은게 아니라 무진장. 많다.그리고 덥다.그렇기 때문에 방(애기들 교실에 책상을 치우고 매트리스를 깔았다)에서 선풍기를 끌 수가 없다.천장에서 선풍기 삐익삑 소리를 내면서 돌아가면 엄청난 종류의 벌레들이소중한 내 잠자리. 매트리스 위에 떨어진다. 소복히.이 날도 샤워를 하고 상쾌한 기분으로 돌아왔는데 하늘색 매트리스가 점박이로 바뀌어있는거다. 오늘따라 벌레가 유난히 많다.에잇. 하고선옆으로 털어 냈다. 으스러죽는 벌레. 날아가버리는 벌레. 꿈쩍도 안하는 벌레 들들들 이제야 다시 하늘색 매트리스로 돌아왔다.휴ㅡ짜증을 식히고 내 할일을 한다.그러고 다시 돌아보면 벌레가 툭툭 떨어진다.오늘 따라 유난히. 짜증이 난다.여러번 다시 털어내기를 반복하고.일층으로 내려가 빗자루를 들고온다. 그리고 방을 쓸어낸다. 살아있는 벌레도 죽은 벌레도 다 쓸어내고선 이젠 괜찮겠지.안심을 하고 매트리스를 바라보면 툭툭 ..조그만 벌레가 선풍기 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떨어져버리는 거다. 옆자리 수은이 테잎을 말도 없이 가져가 쓴다. 나중에 돌아오면 말해야지.이것들 내가 다 죽여버리겠어. 란 마음으로.메신저로 대화중이던 남자친구에게 끊임없이 짜증을 낸다.아 오늘따라 벌레가 너무 심해. 으아아아악. 짜증나.오빠는 괜찮다지만 그래도 미안하다. 그렇지만 치밀어 오르는 짜증을 어쩔 수가 없다.그런데 내가 왜 이렇게 짜증을 내고 있는거지?왜지? 내가 짜증을 내도 벌레는 떨어져 내릴테고. 이건 여기에 머무는 두달동안 그랬고앞으로 세달동안 있을 일인데.짜증을 내느라 남자친구와 대화도 제대로 안되고 스트레스만 받고 있는데.더인터논에서 페차린씨가 하셨던 말씀이 생각났다.; Only your heart can control yourself.우스웠다.짜증이 난다고 짜증을 있는대로 내고 있는 나를 보니 참.큭큭큭큭큭큭큭 아 바보.뭐 벌레 뭐 떨어져 내리면 뭐. 별거 있나 뭐 ~그렇게 마음 먹고 나니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지는 않았지만) 더이상 짜증은 나지 않았다.혹시나 너무 슬프다면. 너무 짜증이 난다면. 그것 때문에 자신이 힘들다면.자신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은 '나' 밖에 없다는 걸 떠올리면 그렇게 힘들지 않을텐데(우선 나부터 잊지 말아야지)감히 이렇게 말해봅니다.당신을 변화 시키고 컨트롤 할 수 있는 존재는 부모님도, 친구도 아닌 자기자신이래요.우히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