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기 태국팀 귀국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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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기 태국팀이 8월 4일에 모든 현지활동을 마치고 귀국했습니다.그들의 5개월의 활동을 정리하는 귀국보고서입니다. Click
태국팀 6월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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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온아띠 3기 태국팀 6월 보고서입니다. ▶클릭
태국팀 5월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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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온아띠 3기 태국팀 5월 보고서입니다^ㅡ^
태국팀 4월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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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팀의 4월 보고서입니다!알집을 다운 받으 신 후, 풀어서 JPG 파일형태로 보실 수 있습니다!
태국팀 3월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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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라온아띠 사무국 입니다. 라온아띠 3기가 2010년 3월 3일에 출국한 뒤, 벌써 한 달이 훌쩍 지나가 버렸네요.그동안 우리 친구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 주셨는데요,드디어, 3기 친구들의 3월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보고서가 도착하였습니다!현지와의 첫 만남에서부터 조금씩 현지에 물들어가는 아띠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그럼, 라온아띠 3기의 앞으로 남은 현지 4개월에도 지속적인 관심 부탁드립니다^ㅡ^ [이 게시물은 운영자님에 의해 2010-05-04 11:45:38 공지사항에서 이동 됨]
sa wat dee karp, thai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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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5일.....언제오나 했던 날이... 오지 않을줄 알았던 날이 찾아왔다.하지만 당일이 되서도 한국에 간다는게... 이곳 삼캉펭YMCA를 떠난다는게 믿겨지지 않았다.언제나처럼 일어나서 1층에 내려간뒤 피낭과 피멈에게 '싸와디캅' 이라며 인사를 했고피낭이 요리해준 아침을 먹었다. 그리고 나서 평소처럼 샤워를 하고 방으로 돌아왔는데..방에 덩그러니 있는 캐리어를 보니 평소와의 일상과는 다른 한가지를 해야한다는게 생각났다.옷을 먼저 꾸깃꾸깃 쑤셔넣고 한국에 있는 지인들에게 줄 선물을 집어넣을때 까진 늘상다니던 캠프에 가는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캠프가 끝나면 늘 그랬듯이 다시 이곳으로 돌아올것만 같은....하지만 이곳 친구들과 홈스테이를 하면서 받은 선물들을 캐리어에 집어넣기 시작했을때야비롯 깨달았다. 오늘이 바로 마지막 날이라는것을....사연이 담긴 물건들을 하나하나 캐리어에 집어넣으며 지난 추억들도 같이 집어넣었다. 분명 태국에 올때보다는 가벼워진 짐이었지만 지난 5개월간의 추억이 들어있기 떄문일까? 들기조차 버겁게 느껴진다..짐을 정리한후엔 1층으로 내려갔다. 늘 보던것과 같은 풍경이었지만, 이제부턴 늘 볼수없으리란 생각에 평소엔 찍을 생각을 안했었던 피낭과 피멈의 모습을 담아두고 싶었다. 매일 보기때문에 그동안 안찍었다면 핑계일까? 핑계겠지.....라는 생각을 하며 그곳에 있는 사람들과 사진을 한장한장 찍었다.그리고 5개월간 지지고 볶고 했던 집을...삼캉펭 YMCA를 떠났다.
○ 피낭과 피멈과 함께솔직히 그 다음부터는 뭘 했는지조차 모르겠다. 정신이 들었을때는 터미널로 들어가는 입구 앞에서 작별인사를 하고 있는 팀원들과 피낭과 피멈의 우는 얼굴을 보고 덩달아 울고 있는 나를 발견했을 뿐....그제서야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정든 이곳을 떠나는구나...라고...○ 터미널에 들어가기 전친구라고 먼저 불러줬던 피요.쿤따라고 부르며 옆구리를 찔러대던 피똔예의범절이 몸에 베셨던 피푸.모든 이를 덱덱으로 취급하시는 호탕하신 피프레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주시던 피낭삼캉펭에서 매일 우리 뒷바라지를 해주시던 피멈so cool하신 피샤언제나 안전운전..은 아니지만 편안한 여행길을 책임지셨던 피툰대장님이신 피디그리고 온, 프로그, 땡&모, 핌, 자캼 3총사와 띵똥3총사, 윌리엄, 치아, 왕녀를 배웅나온 아랍왕자와 여러 친구들...그네들을 보는게 오늘이 마지막은 아닐테지만 그래도 슬펐다. 이유없이 슬펐다. 하지만 인사는 해야겠지라면서 우는 얼굴로 떨리는 목소리로 작별을 고했다. 그리고한국에 돌아가면 good boy 가 되라며 웃음가득한 얼굴로 머리를 쓰다듬어주시던 피프레의미소를 뒤로 한 채 비행기를 타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무언가가 발에 메여있는지 발걸음을 떼기가 힘들었지만 한 걸음, 한 걸음 발걸음을 옮겨 나갔다. 뒤를 돌아보지 않고 한걸음 한걸음 걸어갔다.그렇게 걸어가다 창밖의 하늘을 바라보니 유난히 아름다웠다. 언제나 아름다웠던 태국하늘이지만유독 아름다웠다. 슬프도록 아름답게 물들어있는 하늘이었다. 이 하늘을 보는것은 오늘이 마지막이겠구나 라며 혼잣말을 하고 있을때 옆을 지나가던닥완(닥스훈트+따완)이 멋진 한마디를 해줬다."오늘 우리는 그 하늘을 날아가요"'그렇지! 하늘을 날아갈수 있지. 날아올 수도 있고!' 그제서야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면서발걸음도 가벼워진듯한 기분이 들었다. ○ 아마도 태국과 한국의 중간지점 즈음..그리고 비행기를 타고 그리운 고향에 발을 디뎠다. 5개월만에 만난 고향에 말이다.그렇게 귀국을 한 뒤 지금은 한국에 있는 집에서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솔직히 5개월간 못본 한국이기에 한국에 돌아오면 자동차가 날아다닐줄 알았지만 너무나도 그대로였기에 태국에서의 5개월이 꿈만 같았다. 하지만 옆에 있는 사진들과 마음속에 담겨있는 것들을 보니 그것은 꿈이 아니었다. 아름다운 추억과 소중한 경험들이었다. 잊지 못하겠지...아니..어떻게 잊을수 있을까?타타의 메뉴가 머리속에 들어있고, 사람들의 웃는 얼굴이 눈에 박혀있고, 정복하지 못했던 팍치냄새가 코를 간질이고, 피낭이 해준 카오똠의 맛이 입안에서 멤도는데...그리고 태국에서의 황금빛으로 물든 추억들이 심장에 꽉 차있는데.....어찌 잊으랴??난 추억은 가슴으로 하는거고, 기억은 머리로 한다는 말을 하고 다닌다.태국에서의 5개월을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두근두근 거린다.그렇기에 추억임이 분명하리라..추억은 전부 기억할수 있지만, 기억은 전부 추억할수 없기에 지난 5개월은 생에 다시없을시간들, 인생에서 커다란 부분을 차지할 아름다운 추억이고, 경험이고, 선물이다.꼭 기억할꺼다. 태국에서의 5개월을...'sa wat dee karp, thailand, pot kkan mai'
2009.08.01. Campaign in Samkhanpaeng street mark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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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우리의마지막활동이될듯한캠페인...우리가 살고 있는(우리의 주요 숙소) 삼칸펭YMCA 바로 앞에는 Main street가 하나 있는데,이곳에서 매주 토요일 마다 STREET MARKET이 열린다.치앙마이에 있는 나이트바자나 선데이마켓보다 조금 더 서민적이고,외국인의 손길이 닿지 않는 정말로 태국스러운 곳이라서 우리가 좋아하는 이벤트 중에 하나이다. 바깥 생활이 자유롭지 못한 우리에게 토요일의 Street market은 오아시스와 같은 존재였다.여기에서 지낼 땐 항상 토요일을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뭔가 사고 싶어서라기 보단 그냥 그 분위기 자체를 즐겼달까, 아무튼 그런 느낌으로...6월 이후(사실은 5월 부터 조금씩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에는 본격적으로 태국의 우기가 시작되었기 때문에 street market이 제대로 운영되고 있지 않을 때가 많았다.오늘은 살 수 있을까, 오늘은 비가 안와야 될 텐데 하면서 6, 7월을 보냈다.홈스테이도 하고 이런저런 일들이 있어서 제대로 street market을 가지 못했는데 벌써 마지막이다.이제 태국에서의 토요일도 마지막이야,바로 3일 뒤면 태국을 떠난다니 믿기지가 않는다.왠지 평생 살고 있을 것만 같았던 곳이여서 그랬나 ?어쨌든,7월 마지막 주 부터 태국팀은 좀 바빴다.태국으로 한국에서 오는 2팀의 단기 봉사팀이 들어오게 되어 송국장님과 피인타논의 부탁으로 심각하게 회의를 한 끝에(?) 더이따오팀은 주니어 라온아띠를 맡아서 활동하게 되었고 우리 미녀 람푼팀은(^^) 인천Y에서 오는 꼬꼬마들을 맡아서 활동하게 되었다.이제 끝일 것 같았던 홈스테이도 하고 벽화도 그렸다.그리고 오늘은 공식적으로 우리의 마지막 활동이 될 캠페인 활동을 하게 되었다.제대로 설명을 듣진 못했지만 (아마)1기 활동의 연장으로 앞으로도 계속 이 삼칸펭 street market에서의 캠페인활동은 이어질 것 같다.태국아이들은 전날 부터 삼칸펭에 머무르면서 이런 저런 준비도 하고 각 팀별로 퍼포먼스도 준비하고 전투적인(?)태세로 캠페인에 몰입했다.주니어 라온아띠 친구들, 그리고 인천Y 친구들 모두모두 열심히 다 참여해줘서 너무 고마웠고 또 성공리에 캠페인을 마칠 수 있었다.마지막에는 집에 옮겨심을 수 있는 새싹(?)과 재활용 가방을 팔았었는데 팔다가 노래부르다가 팔다가 춤추다가 태국친구들, 한국친구들 함께 즐길 수 있었다.우리의마지막활동이이렇게끝났다▲ 각자 팀을 나눠 준비한 주제로 사람들에게 홍보하고 발표▲ 피챠님의 반 협박으로 이뤄진 응원단(웃음)▲ 함께 즐겨준 고마운 인천Y 친구들 윗줄, 좌로부터 오플로이, 간지지수, 영어를잘할것만같은정열이, 김퐈, 구따완, 귀염둥이...▲ 찍사한다고 제대로 사진 못찍어서 같이 찍어준 친절한 애기들과 장마리
태국에 다시 와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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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돌아가면 가장 많이 그리울 것 같은 사람들과 장소는먹고 자고 싸고 일하고 싸우고 웃고 운동했던 숙소, 쌍캉펭YMCA나 YMCA 사람들이 아니라집 앞에 있는 작은 TESCO LOTUS와 그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어느 순간부터인가 이름을 묻고, 여기 왜 왔는지 묻기 시작했다.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나는 그들과 함께 술을 마시고 있었다.사실 여기서 나는 봉사자가 아니다. 다치면 안되는 '귀빈'이다.내 이름은 춈푸, 박선하가 아니었고 '콘까올리(한국인)' 또는 '국민은행과 한국Y서포트를 받아서 온 아이' 였다.그것에 질리고 질려 있던 내게 막무가내로 반말을 찍찍 하며 이름을 묻던 그 아이들이 그렇게 반가울 수 가 없었다. Y에서 하지말라는 일은 다 종용하는 그 아이들이 그렇게 고마울 수 없었다. 내가 말을 못알아들으면 발차기부터 날라오는 게 그렇게 시원할 수 없었다. 지점장 아저씨가 돈도 안쓰고 앉아서 시끄럽게 놀다가 별 희한한 짓 다 하고 가는 나를 슬슬 째려보기 시작해도 나는 버티고 앉아 있었다.매일 심심하면 자전거를 타고 테스코에 가서 가끔 일도 하고, 발차기하고 머리 치면서 놀고, 되도 않는 태국어로 수다떨고, 그리고 그 앞에 앉아서 아이들과 술을 마셨다. 태국 Y의 답답함에 눌려 있던 내게 그 아이들은 오아시스 같았다.실제로 알콜을 공급해주는 오아시스였다. (ㅋㅋㅋ)나를 막 대해주는 그 아이들에게서 편안함을 느꼈다. (ㅋㅋㅋㅋ)쉬는 날에는 차나 오토바이로 시내에 놀러가기도 했다.유일한 여자아이인 BIW가 남자친구에게 차였을 때 같이 위로주를 마셨다.며칠씩 다른 지역을 가면 아이들은 언제 오냐, 선물 사와라며 계속 전화를 해댔다.그러면서 태국어가 참 많이 늘었다.영어를 하나도 못하는 아이들은 내게 태국어를 열심히 가르쳤다.그러던 내게 얼마 전한 친구가 물었다."6일날 우리 다같이 원숭이 보러 가기로 했어. 같이 갈꺼지?""나...사실 말 못했는데, 4일날 한국 가."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던 그 친구가 중요한 선언을 하듯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음...... 그럼 비행기 표 바꾸면 되겠네. 더 있다 가."며칠 후, 내가 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어렴풋이 이해한 아이들은내 MP3에 태국 노래가 하나도 없는 것을 알고 자기 USB를 빌려줬다.그러면서 이렇게 이야기했다."다음에 태국 또 놀러올 때, 그 때 돌려줘. 그니까 꼭 다시 와."인건비가 싸고 전자제품은 비싼 태국에서 비싼 물건일텐데,그만 염치도 없이 받고 말았다.꼭 다시 올게.이별이 아니라, 돌아가서도 처음 라온아띠 출국날짜를 설레며 기다렸던 것 처럼다시 너희를 만날 날을 설레게 손꼽으며 하루하루 열심히 살게.4일, 이 사랑스러운 아이들과 이별을 고하기에도 내게는 부족한 시간.
순간을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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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티여우 익 마이?' 안녕-안녕-하는 슬픈 말 대신 아이들은 내 손을 꼭 잡고 묻는다.한국 안보내 줄거야. 라고 억지를 부려보던 친구들도 이제는 체념한 듯 이렇게 묻는다.고작 3일동안 밥만 축내던 우리를 보내며 우리집 메(엄마)가 펑펑 우시며 물었다.모두들, 안녕이라는 인사는 하기 싫은지 내 손을 꼭 잡고 묻는다.'또 놀러 올거야?' 라고. 그럼 또 나는 되묻고 싶다.'왜 또 살러 올거냐고 묻지 않는거야?' 그들도, 나도 알고 있다. 이곳이 내게 영원히 머물 수 없는 곳이라는 것을.1달간의 홈스테이를 마치고 차에 탈 때 펑펑 울던 우리집 아이도,고작 3일간 많이 먹고 늦게 일어나던 게으른 우리를 보내며 펑펑 우시던 치앙라이 엄마도,나의 '탈선행각'에 큰 도움을 주었던 YMCA와 상관없는 동네 친구들도,매일 우리를 위해 밥을 해 주시던 스탭들도.나는 이곳을 5개월간 느리게 지나가는 사람.이제 나의 발걸음이 4박자를 맞추어 이 곳을 완전히 빠져나가면내가 없었다는 듯이 이 사람들의 일상은 돌아가겠지만아마 나는 잊지 못할 것이다.학교에 갈때마다 꼬질한 내가 뭐 그리 좋다고 달려들던 도이따오 아이들 얼굴 하나하나,자전거 타던 쌍캉펭의 예쁜 하늘,매일같이 놀러가서 요구르트 하나 사고 앉아서 놀았던 집 앞 TESCO 친구들,어디 멀리 가서 숙소에 없을 땐 전화를 해서 선물사오라며 한마디씩 시끄러웠던 그 아이들,그 앞에 앉아서 같이 맥주를 마시다가 봤던 밤 거리 풍경,길거리에서 지나가던 코끼리,내가 머리에 쓰고 다니던 수건이 보기 싫다며 확 뺏어버리던 도이따오 선생님들,나를 보내주며 펑펑 울던 매홍손의 꼽,벤이 아닌 자전거를 타며 달리던 길도이따오에서 9살짜리가 모는 오토바이 뒤에 타고 가던 길,음악을 연주하며 같이 태국 유행가를 불렀던 것놀아달라고 쫓아오는 아이들이 무서워서 자는척하다가 더워 질식할 뻔 했던 것,밤에 몰래 집 앞에 나갔다가 문이 잠겨서 담넘고 들어왔던 기억스탭이랑 잘 되지도 않는 영어로 싸우고 한달 넘게 말도 안하고 지냈던 것'깨- 너 맨날 까불지만 니가 참 좋은 애라는거 알아. 너 정말정말 좋아해' 했더니얼굴이 빨개지며 자전거로 저 끝까지 달려가 버리던 도이따오 산골아이'YOU! 띵똥 막막 러이 - (띵똥 : CRAZY / 막막 : 너무, 엄-청!)" 하던 치앙라이 아이들별 대단한 것들보다쉽게 지나칠 수 있던 순간들이 기억속에 선명하다.이제 곧 모두가 '과거'가 되겠지만내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가 나를 위로해 준다.너의 영원한 미소 그리워 이 순간들을 다시 헤아려보니 그래도 내겐 기쁨이 더 많았어영원한것은 없다 생각하지는 말아요, 우리 기억속에 남은 순간을 믿어요이제 모두 영원한 순간이 되려하네참 잘 했다, 라고 스스로 뿌듯해 할 일이 많지는 않지만참 고마운 사람들이 많기에.